아빠와 설날 사람과

구정풍경은 많이 쓸쓸하지 않았다. 집에 있는 가구나 옷에 부침개 냄새가 스며들어 빠지지 않을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느타리 버섯으로 전도 부쳤고, 설 당일 아침에는 미역과 떡을 이용해 떡국도 끓여냈으니 누구도 특별히 좋아하지 않지만 시기가 시기인만큼 먹어야 하는 음식도 모두 먹었다. TV 프로그램을 통해서 설이 가족과 함께 보내야하는 명절이라는 점도 계속 확인받았고 그 때마다 당장은 한 명뿐인 가족인 아버지와 같이 있었으니 많이 외롭지 않았다. 어머니가 급하게 유학을 떠나시고 동생이 가출을 한 시점에서 아버지가 외로우실 것 같은 그런 시기라 위로해드리려고 일찍 방문한 본가였지만, 다녀와서 생각해보면 똑같이 외로웠을 내가 더 위로 받고 돌아온 느낌이 든다

금요일 퇴근 이후 바로 내려가는 것이 확실한 봉사의 시작으로 맞는 것이였지만 왠지 귀찮은 느낌이 들어서 이런 저런 핑계로 토요일 오후에나 시골에 내려간 것이 뒤늦게 약간 맘에 걸리긴 했다. 토요일 저녁 터미널로 날 마중 나오신 아버지에게 20분 동안 차 안에서 왜 이렇게 게으르냐는 잔소리 폭탄 들어주시고, 그 분위기를 모면하고자 직장에서 익힌 혼나고나서 분위기 전환을 위해 얄밉지만 다른 화제의 이야기 시작스킬을 시전하여 부랴부랴 채식하시는 아버지와 함께 먹으려고 가져왔다고 큰 가방에서 배추와 드레싱을 꺼내서 보여드렸다. 유학가신 어머니가 거기에서 나름대로 명절병에 걸리셨는지 함께 며칠 간 스카이프 대화를 하며 느끼신 스트레스를 한 10분 들어드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주인 없는 날이 더 많은 빈 집에 살고 있는 다섯 마리의 강아지들과 인사. 그간 집에 오지 않아 잃었을 점수를 따려고 어지간히 쓰다듬어주고 같이 놀아주었다.

연휴 내내 대 부분의 일과는 아버지랑 둘이 먹을 식사 준비, 설거지, TV시청, 강아지 밥 챙겨주기 등등 그저 손에 잡히는대로 눈에 보이는대로 나타나는 정리해야 하는 일들을 했다. 식사를 마치면 커피와 다과를 데워서 아버지와 같이 소파에 앉아 채널을 돌리며 웃고 떠들고 TV를 본다. TV를 보는 내내 한 번 되짚을 만한 장면엔 어김없이 둘이 번갈아가며 개그를 친다.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하나 발견했다고 TV 다시 보기 메뉴를 리모콘으로 탐색하시어 요즘 꽂혀있으신다는 나는 하수다도 한 편 보여주시고, 나도 일전에 하오차오를 일부러 보여드린 적이 있어서 또 아빠가 좋다고 하시는 프로그램에 크게 리액션 해드린다. (사실 나꼼수도 그렇고 별로 즐기는 장르는 아닌데) 실제 나꼼수 팟캐스트를 트시고 왠지 쫄지마 씨발~’ 이런 대목에서 아빠가 허허 웃으시며 들으시는데 예전에 내가 알던 아빠 모습이랑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물론 집에 한참 붙어있을 시기에는 공부해야할 시기였어서 어떤 행동도 자유롭지 못했었다. 밥을 먹다가 한 소리 들을 때도 있었고, 뭐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혼나는 경우가 많아서 일상이 편안하지 않았는데 이번 연휴에서 아빠가 화를 낸 것은 내가 집에 늦게 도착했던 토요일과, 아침에 부랴부랴 떡국을 끓이느라 씻지 못한 월요일 아침 둘 뿐이였다. 화를 내는 이유도 그저 똥강아지야 머리를 말렸으면 밑에 니가 만든 카펫을 치워, 드라이기는 썼으면 정리해서 넣어놔류였다. 아빠가 많이 늙긴 했나 생각이 잠깐 들었다.

자유로운 분위기가 되니까 설이라고 채널을 돌리다가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B1A4, 보이프렌드)이 나오면 내가 자연스럽게 꺅꺅 소리를 질러도 그냥 웃으시고, 그 무대가 끝나고 다른 걸그룹이 나오면 아빠도 아빠 나름대로 눈이 동글동글 감상하신다. TV를 보다가 재미없어지면 내가 과자를 더 내어오면 그만이었고, 둘이 심각한 이야기를 해야하는 시점에서도 그저 한 두마디 오가고 또 간식을 먹고.. 시내에 장이 열린다고 해서 무작정 차를 타고 나가 시장을 한바퀴 돌고, 다이소에 들러 뜬금없이 국자를 사고, 대학 때 많이 먹었던 계란빵을 파는 차가 있어서 하나 사서 둘이 나눠먹고. 또 그렇게 한참 쉬다보면 강아지들이 배고프다고 짖기 시작해서 냉동실에 어묵을 꺼내 한 솥 끓여 개사료와 섞어서 먹이고. 강아지들은 얼굴 전체를 적셔가며 그릇에 구멍 뚫을 기세로 해주는 것마다 맛있다고 잘 먹고, 또 그 모습을 아빠가 지켜보시다가 저 놈들 앞으로 4-5년은 더 살겠구만이라고 가장 늙은 약 10년 된 시츄를 보고 말씀하셨다.

위에 말한 것처럼 집이 빈집인 이유는 일단 아빠도 직장 생활을 서울에서 하고 계시고, 집에 가는 건 지방에서 회의가 있는 주중 어떤 날이나 주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요일이 되어 연휴 마지막 날이 되자 우린 점심을 먹고 차를 탄 뒤 다시 서울로 향했다. 가는 내내 아빠의 난폭운전으로 멀미를 하고,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운지 아빠는 차를 우리집 근처 미술관으로 돌려 같이 미술관 야외 산책을 했다. 미술관 전시가 끝나는 시간이라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외부 조형물을 보며 한 바퀴 돌고 입구에 있던 하양-빨강 바 (이걸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자동차 출입할 때 입구에서 진입 막는 바인데..)를 보고 내가 림보로 지나가자고 장난을 쳤다. 림보자세로 그 밑을 지나가려고 하니 갑자기 바가 슥 올라가서 깜짝 놀라 보니 부스 안에 사람이 있었나보다. 민망해서 총총 걸음으로 차로 돌아왔다. -_-;

내가 살고 있는 자취방 앞에 차를 세워주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하시는데 그 때 가장 후회되는 것이 설날 연휴라고 같이 집에 있었으면서 그 쉬운 세배 하나 10초 못했다는 것이었다. 둘이 있는데 민망하기도 하고, 아니 이건 누가 보면 당연히 해야 하는건데 그냥 내가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 그 때 민망한 거 조금 참고 세배 한 번 할걸~ 하는 생각이 지금까지 들지만 아마 연휴가 늘거나 시간을 뒤로 돌릴 수 있다고 해도 나는 못했을 것 같다. 보통 이렇게 그 순간 못하는 일이 생기면 꼭 그 일을 할려고 해도 못하는 상황이 되던데 나는 아마 땅을 치고 후회하겠지. 다가오는 추석도, 내년 설도, 가장 짧게 생각하면 내년 추석까지도 집에 엄마는 없다. 동생도 언제쯤 마음을 잡고 다시 집에 돌아올지 모르겠다. 몇 개의 명절을 또 이렇게 그냥 쉬는 것처럼 아빠와 보내게 될 것이고, 아빠 걱정을 해서 일부러 노력하는듯해도 결과적으로 내가 더 위로 받는 그런 시간이 또 오겠지.. 크리스마스 캐롤이 그랬던 것처럼 이러니 저러니 TV에서 떠드는, 우리가 교과서나 주변을 통해서 알고 있는 명절은 아직 내게 너무 낯설고 쓸쓸한 것이다. 혼자인 아빠에게 이런 명절이 조금 덜 쓸쓸하도록 내가 애교많고 그저 예쁨받고 싶어하던 예닐곱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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